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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살롱

 

Stars, 1912-1915, oil on panel, 100.1cm X 80.8cm, Kees van Dongen

 

 

# / Alphonse Daudet (알퐁스 도데)

 

"많기도 해라! 아름다워! 저렇게 많은 별을 보기는 처음이야...저 별들의 이름을 아니?"

 

"그럼요, 아가씨...자 보세요! 우리 머리 바로 위에 있는 저건...”

 

(중간생략)

 

“...그러나 아가씨, 모든 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은 역시 우리들의 별 양치기의 별이에요. 새벽녘 우리들이 양떼를 밖으로 몰아낼 때 우리를 비춰 주며 저녁이 되어 그들을 몰아 넣을 때도 역시 비춰 주지요. 우리들은 이것을 마글론느라고도 부릅니다. ‘프로방스의 삐에르의 뒤를 쫓아, 7년만에 한 번씩 그와 결혼한대요."

 

"어머나! 그럼 별들에게도 결혼이란 게 있어?"

 

"그럼요, 아가씨."

 

그래서 내가 그 결혼이란 게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려고 할 때, 나는 무엇인가 부드럽고 연한 것이 내 어깨 위에 가볍게 얹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리본과 레이스, 그리고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스치면서 내게 기대어 오는, 잠들어 축 늘어진 그녀의 머리였다. 그녀는 하늘의 별들이 솟아오르는 아침 빛으로 지워져 흐려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나는 가슴속이 약간 두근거렸지만, 내게 아름다운 생각만을 보내준 이 맑은 밤하늘에 성스럽게 보호를 받아 고이 잠들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별들 중 하나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잠들고 있다고 몇 번이나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 알퐁스 도데의 중에서 -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정의 내리고 그것을 표현해 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도 아름다움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자연이 아닐까 생각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주는 느낌들은 비슷한 것 같다. 별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별은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과 영감(靈感,inspiration), 사랑과 희망을 주는 어떤 것이다. 때때로 그리운 이의 이름이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며, 외로운 이의 향수(鄕愁)이다.

 

 

별을 모티브로 한 창작물들은 문학, 미술, 음악 등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많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감(靈感,inspiration)을 주는 피조물인 듯 싶다.

 

 

이 그림, 멀리서 보면 신비로운데 가까이서 보면 실망할 수 있다. 야수파의 대가가 그린 작품이라 하기에는 여느 초등학생의 그림과 다르지 않아 보여서 그렇다. 초등학생의 그림이 실망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어린 시절에 그린 것이 아닌, 서른 중반의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펄펄 끓는 열정으로 무수히 많은 여인들을 그린 키스 반 동겐의 그림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별을 좋아해서인지 이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낮게 탄성을 내었다. 어찌되었든지 그냥 끄적인 것일지라도 점점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별이니까. 그가 왜 별을 그렸는지, 정말 그의 작품이 맞는지 이런저런 궁금증으로 시간이 흘렀다.

 

 

이 그림은 작품명, 그려진 시기, 작품의 사이즈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어떤 설명도 찾지 못했다. 덕분에 천재의 그림을 그냥 어느 꼬마의 그림이라 상상하면서, 잊고 있던 순수의 시절을 한 번 더 기억하게 되었다. 시대와 나라는 달라도 같은 방식으로 별을 그렸다는 것과, 야수파의 대가가 그린 별이 내가 그린 별과 똑같다는 것도 은근 흥미로웠다.

 

 

작품Stars를 본 뒤로 나는 어린왕자의 소행성 b-612’가 아닌 기억 속의 별기억할 별 생각났. 기억 속의 한 별은 알퐁스 도데의 단편 에서 나오는 두 청춘이다. 보이는 별이 아닌 마음속 별을 노래하는 수줍은 사랑이다. 밤새 아가씨를 지켜내는 목동의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별, 그 별 하나가 자기 어깨에 살포시 내려와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나에게 그런 청춘이 언제였던가 기억을 돌려보았다.

 

 

키스 반 동겐은 바(bar)에서 일하는 무희들과 다양한 신분의 여인들 누드를 그렸다. 상대를 유혹하는 눈빛으로 뇌쇄적인 모습이 짙은 여인들의 초상들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작품들을 보면 퇴폐적일 수 있는 그림들에서 순수하고 조용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색채가 맑고 인물들의 표정이 서늘하기도 하다. 무희들은 음악에 자유롭게 몸을 맡긴 채로 천진한 얼굴들이 많다.

 

 

음습한 분위기에서조차 그의 눈에는 모든 여인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나 보다. 90세가 넘어서 생을 마감한 노장의 얼굴이 작품속 여인들의 천진함과 비슷하다. 프란츠 카프카는 "Anyone who keeps the ability to see beauty, never grows old.” 라고 했다. 누구든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사람은 결코 늙지 않는다. 아마도 키스 반 동겐은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른 중반에 뇌쇄적인 자태의 여인들만 숱하게 그린 화가가 갑자기 밤하늘의 별을 그린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극과 극이 통하 듯, 순수함과 그렇지 않음도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것으로 통했던 접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그림 속 여인들은 그토록 아름다움을 발했고, 별은 스스로 빛났기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또 하나 기억할 별이 있다.

4월 어느 밤에 쏟아지던 별들이다. 영원히 지지 않을 별들을 기억하되 수줍도록 아름다운 청춘을,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청춘을 기억하자.

스스로 환하게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별들을 바라보자.

 

이제 아린 눈물 훔쳐내고 쏟아지는 저 별들을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름다운 저 별들이...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말이다.

팽목항 밤하늘이 오늘도 빛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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