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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살롱

silence and silence

# silence and silence / 유미주

 

저 높은 산꼭대기에

나무가

살아 있다는 건 말야

 

그곳에도

그곳에도

 

물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야

 

 

지난해 7월, 그림이 나에게 희망을 이야기했다. 선명하고 생생한 울림 앞에 화가가 누구인지 작품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림으로 오롯이 위로와 격려를 받았던 여름이었다. 1년이 지나 다시 본 그림이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한다.

 

 

말라 비틀어진 저들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보이고, 계절적으로 가을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파리하게 구부러진 나뭇가지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 나뭇잎들이 있다. 그 사이로 흩어지는 에너지에 눈이 부시다. 그림은 가을이라 말하지만 태양은 여름날처럼 뜨겁다.

 

 

Autumn sun 1912 , oil on canvas , 80.2 × 80.5 , Egon Schiele

 

 

떠오르는 해인지 저무는 해인지 알 길이 없으나, 목말라 비틀어지고 벗어 버린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강렬함이 느껴진다. 구부러진 몸뚱이로 굳건하게 서 있다. 희망이 보인다. 위로를 받는다. 비틀어진 몸뚱이는 선명한 메시지이다. 그곳에 시선이 머물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탱한 생명 근원에 마음이 닿았다.

 

 

헐벗고 목마른 저들은 아직 해 볼만하다 한다. 이토록 당당함은 꺾일 때까지 버텨줄 버팀목과 영원히 식지 않을 태양 그리고 마르지 않는 생명 근원이 저 바닥 깊이 숨어 있음을 알고 난 뒤부터다. 그래서 실망하지 않고 꺾이지 않는다.

 

 

선이 강하고 외설에 가까운 느낌을 예술로 표현했던 화가. 이 그림이 그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작가를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자기 세계에서 거침이 없었고 자신만만했던 이 젊은 예술인을 시대는 ‘천재 화가’라 부르고 있다. 꽤 오랜 시간 그를 관찰했다. 그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영특하고 조악하며 뜨겁다. 어느 날은 거칠었고 어느 날은 조롱했다.

 

 

인간의 이중성을 들춰내어 똑바로 보게 하고야 마는 지독한 근성이 있다. 열여섯 살, 미술학교에 입학했을 때 “악마가 너를 내 수업에 들여 보냈구나. 어디 가서 내가 너의 선생이라 말하지 말거라.” 라고 할 만큼 스승조차 그 끼를 탐탁지 않아 했다. 현대 사회에서도 예술로 표현하기에 부적절한 ‘욕망과 갈증’을 겁도 없이 펼쳐낸 장본인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고 그를 관찰하면서 개인적으로 더 좋아진 건 아니다. 화가나 또는 그들 작품을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그건 개인의 몫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지금까지 화가의 이름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강렬하게 살다 간 그를 알아보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무엇을 이야기할 지도 남겨 놓고 싶다. 그는 천재 화가 에곤 쉴레, 천천히 만나보길 바란다.

 

 

시간이 지날수록 헐벗고 목마르고 비틀어진 몸뚱아리에서 화가의 초상이 느껴진다.

 

http://www.namdotoday.com/news/view.asp?idx=2366 남도투데이 유미주작가의 화창한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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