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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살롱

흑과 백으로만 세상을 그리는 이 남자

 

일상, 오디너리 피플

 

 

< 보아가는 풍경 2008, 장지, 방해말(돌가루), 목탄, 140cm x140cm, 박영학 作 >

 

 

 

일상, 오디너리 피플 / 유미주

흑과 백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는 그릇
자연의 빛깔만큼이나 살아있다

내밀한 일상은 성실하다
고요해서 빨려든다

풍경 위에
작은 리듬이 소용돌이치면

길을 걷다가
시선이 머무는 곳에 멈춰서라

거기에 설렘이 있고
그 너머 기대가 있을 테니까

일상은 이렇게 흑과 백에서 묻어나는 자연의 빛깔
우리는 그 자리에서 오디너리 피플이다

 


평범한 일상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고뇌는 예술을 꽃피우게 하는 필수 요소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고뇌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은 수많은 고뇌 앞에 할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박영학 작가는 높은 몰입을 요하는 까다로운 작업에도 불구하고 자랑이 없다.

말을 아끼고 군더더기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고 겸손하다.


 

일상의 '다음 장면'을 설렘과 기대감으로 조용히 만들어 내는 박영학 작가. 하루 24시간 오직 작품만을 생각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하루를 25시간처럼 사용하는 작가인 듯하다. 그의 작품은 재료와 기법의 특성상 밑그림을 90%이상 완벽하게 그려 내야 하는 세밀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말도 에너지도 아끼는 것 같다.


 

기사 관련 사진

                                                                                                

 

 

세밀하고 실수가 거의 없다. 크게 웃지도 몇 번 웃지도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고뇌하며 자신의 것을 찾은 화가가 갖는 여유로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손끝이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모든 색을 빼고 흑과 백으로만 풍경을 담는다. 멀리서 보면 수묵화같고 다시 보면 판화같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와 같이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흑과 백' 속엔 케테 콜비츠의 작품에 없는 자연의 컬러가 담겨 있다.

 



그는 소나무를 직접 구워 만든 숯(목탄)으로 그린다. 숯이 인간이 불을 발견한 때부터 사용했다면 약 5000~6000년 전부터 사용했던 재료이다. 자연의 일부인 나무토막이 불(火)과 씨름한 시간은 기대감으로 더 뜨겁게 달구어 진다. 일상에서 나무토막이 '숯'이 되는 찰나이다.

정화에 정화를 거쳐 가장 원시적인 재료 '숯'은 이렇게 탄생한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아직 불완전하다.

작가의 손끝에서 느낌있는 재료가 되는 순간, 비로소 자연의 풍경을 완전하게 표현하게 된다.



숯조각을 여러 번 붙여 만든 밤하늘에는 먹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맑음이 있다.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인 숯, 그 다양한 입면체가 빛에 반응했기에 가능한 것 같다. 먹으로만 흑(黑)을 표현했다면 답답하고 지루하고 무거웠을 것이다.

 



장르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먹이 아니고 붓이 아닌 숯덩이여서가 아니다.

화선지가 아닌 돌가루 방해말을 12번 이상 덧입힌 장지(壯紙)라서가 아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가 먹과 화선지를 떠나서 산수(山水)를 표현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재료와 기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여전히 여백의 미와 사유의 철학으로 꽃을 피운 것은, 바로 내밀하고 성실한 일상에서 오랜 고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힘들고 어려운 재료를 선택해서 얻는 게 있다면, 일상에서 작품에 몰입할 때에 주어지는 '애착'과 풍경 너머에 있는 '설렘'이다. 가까이도 보이고 멀리 있는 것도 보인다.

목적을 향한 일상의 성실함과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기대감은 오롯이 그의 몫이다.

 



기사 관련 사진

                                                                                                                                                  <작업과정>

 

 

나는 저 어느쯤에 걸어가고 있다. 산 마루에 앉아 쉬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는 그런 느낌이다.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현재 내가 걸어가고 있는 걸음이다.

산을 넘으면 누가 기다릴지, 바다를 건너면 어디에 닿을지,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를 기대하면서 멈추지 않고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연 외에는 그 어떤 구조물도 없다. 판화같던 그림이 이제 흑백 사진처럼 느껴진다. 동양적이면서도 현대적이다. 색을 뺐지만 자연의 빛깔을 그대로 담은 작품들이 신비롭다. 숯으로 그려내는 역동적인 선, 조각조각 붙인 검은 숯, 희고 고운 방해말에서 빛나는 여백은 직접 보는 것과 차이가 난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흑도 백도 아닌 자연의 일상인 것 같다.

무심히 스쳐가는 흔한 풍경이라도 예술가에게는 특별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음은 확실하다.

 


몇 주 전에 우연히 작품을 보고 마음에 닿았는데 리플릿에 연락처가 없어 물어물어 찾았다. 뛰어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은 자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란다. 하지만 아시아와 유럽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졌던 실력 있는 작가였다. 그럼에도 그 흔한 사진도 정보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자랑을 좀 해도 되지 않을까?

 


문득 작가는 외로워 보였는데 그림은 외롭지 않다. 풍경에는 사람도 집도 없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길'만 남아 있다. 나는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기대하면서 걷는 중이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없습니다. 작업 하나하나 할 때마다 애착이 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작업 진행 과정에서 이미 다음 작업 스케치를 하기 때문에 다음 작업이 더 설렙니다. "  

  

                                                                                         - 박영학 작가와 대화 중에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36274 오마이뉴스

http://www.namdotoday.net/news/view.asp?idx=2426 남도투데이 '유미주 작가 화창한 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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